기독교 교양(107) "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은 어떠해야 하는가?"
페이지 정보
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-09-14 20:16관련링크
본문
그리스도인의 직업관은 어떠해야 하는가? -허드슨 아머딩
우리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 그분의 지혜를 구하고 있으며 가장 좋은 은사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지 않으실 것이다.
형벌은 주목하기를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데 대한 결과일 것이다. 우리가 분명한 부르심을 듣고도 “죄송해요. 하지만 그 일은 별로 끌리지 않아요”라거나 “그 일은 보수가 너무 적어요”라고 말한다면, 내 생각에 하나님은 우리를 꾸짖으실 것이다.
우리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불순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.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기다려야 한다.
성경은 부르심(소명)의 두 면을 말한다. 첫째는 로마서 8장이 말하는 것으로 구원과 칭의로의 부르심이다. 둘째는 고린도전서 7장이 말하는 것으로 특정한 직업이나 생활 방식으로의 부르심이다. 후자의 부르심, 곧 하나님의 가정에서 담당해야 하는 활동으로의 부르심이라는 범주에는 초점이 대상이 되는 ‘교회’와 ‘사회’라는 두 영역이 있다.
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준비시키시고 몸(교회) 안에서 우리가 특별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에 우리를 두신다.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부르심이다.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주님께 약속할 필요가 있다.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분석해야 한다.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라고 부르시지 않을 게 분명한 영역을 가려낼 수 있다.
신자는 성경이 명확히 금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직업이라도 선택할 수 있다.
하나님은 모든 일을 귀하게 여기신다. 그러므로 자신이 하는 일이 빌리 그래함이나 마더 테레사의 일에 비해 하찮다고 느끼는 것은 옳지 않다. 하나님이 보시기에 중요한 것은, 드러나지 않는 자리든 잘 드러나는 자리든 간에 그분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이다.
고린도전서 12장에서, 바울은 몸 전체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 “더 약한” 지체들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이야기했다. 이 말씀에서 우리는, 특히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자신의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중요하며 하나님의 전체적 계획이 세상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.